캘리포니아 해안 여행: 꿈과 씁쓸한 현실 사이를 달리다 (1박 2일)
1일 차: 할리우드의 빛과 그림자 속으로
여행의 시작점은 화려함의 대명사,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거리였다. 우리는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풍경과 물개 서식지 촬영을 위해 업체로부터 경비를 지원받아 출발한 여정이었기에 여유롭지 않은 버거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이 ‘스타의 거리’를 따라 걸었다. 반짝이는 별 모양의 명판에 새겨진 전설적인 배우들의 이름과 손도장을 살펴보는 것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특히 TCL 차이니즈 극장 앞은 다양한 영화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한국의 위상, 이병헌 씨와 안성기 씨의 손모양도 확인했다.
할리우드 대로를 따라 늘어선 명품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니, 웅장하고 화려한 쇼윈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고급 보석 매장까지, 눈부신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낮 동안에는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지만, 저녁 무렵 문을 닫기 시작하자 거리는 서서히 고요함에 잠겼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도 왠지 모를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렌터카를 이용해 할리우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밤에도 네온사인과 광고판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대로변과 골목길 어귀에서 쉽게 눈에 띄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낮의 화려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씁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눈빛으로 길거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이 과연 ‘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할리우드 인근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다음 날 아침,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기 전에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또 다른 상징적인 장소인 산타모니카 해변을 방문하기로 했다.
산타모니카 입구 표지
1일 차 (오전): 산타모니카 해변의 활기와 그늘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산타모니카로 향했다.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산타모니카 해변은 활기 넘치는 분위기였다. 드넓은 백사장에서는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유명한 산타모니카 피어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과 상점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히 피어 끝에 있는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사회 문제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었다. 피어 아래 그늘진 곳이나 해변가 한편에는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노숙자들이 눈에 띄었다. 밝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바다를 만끽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씁쓸함이 남아있었다. 이곳 역시 아름다움과 함께 어두운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일 차 (오후): 태평양 연안을 따라 샌타바버라로
산타모니카에서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국도 101호선에 올라 본격적인 해안 도로 일정을 시작했다. LA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할수록 도로는 태평양과 더욱 가까워졌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특히 말리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푸른 바다와 고급스러운 주택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감탄을 자아냈다.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모습은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샌타바버라에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붉은 지붕의 스페인풍 건물들과 푸른 야자수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샌타바버라는 ‘미국의 리비에라’라는 별명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우리는 샌타바버라 해변을 따라 여유롭게 산책하며 햇살을 즐겼고,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따라 늘어선 아기자기한 상점과 갤러리들을 구경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한 레스토랑에서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샌타바버라는 확실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이곳에서도 길거리에서 잠시 쉬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어 마음 한편을 무겁게 했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움 뒤에는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금문교
1일 차 (저녁): 빅서의 장엄함 속으로, 그리고 몬터레
이의 밤
샌타바버라에서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PCH, 즉 캘리포니아 주도 1호선에 합류하여 북쪽으로 향했다. 샌타바버라를 지나면서부터 도로는 더욱 구불구불해졌고, 본격적인 빅서(Big Sur) 구간이 시작되었다. 웅장한 해안 절벽과 깊은 숲이 번갈아 나타나는 풍경은 그야말로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차를 몰아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특히 맥웨이 폭포가 있는 훌리아 파이퍼 번스 주립공원은 꼭 방문해야 할 명소였다. 절벽에서 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빅서 구간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운전하기에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운전하는 것은 다소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경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중간중간 전망대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며 자연의 위대함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우리는 문득 캘리포니아의 심각한 주택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넓은 땅에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집 없이 거리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일까?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주택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 전반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주택 자금 대출의 부실로 인해 발생했던 금융 시스템의 위기가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빅서의 장엄한 풍경을 뒤로하고 몬터레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몬터레이는 아름다운 몬터레이만에 자리 잡은 역사적인 어항 마을로, 밤에는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몬터레이 시내의 한 호텔에 체크인하고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후, 다음 날 아침 방문할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2일 차: 몬터레이의 해양 생물과 카멜의 예술적인 분위기
아침 일찍 서둘러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을 찾았다.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이곳은 정말 다양한 해양 생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거대한 해초 수조를 유영하는 수많은 물고기들과 귀여운 해달, 그리고 신비로운 심해 생물들의 모습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해달 먹이 주는 시간은 많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수족관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차를 몰아 아름다운 해안 마을 카멜바이 더씨로 향했다. 카멜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독특한 상점들과 갤러리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카멜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마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문득,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 마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높은 생활비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멜에서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코스인 페블 비치 골프 링크스가 있는 페블 비치로 향했다. 푸른 잔디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페블 비치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비록 골프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러한 최고급 휴양 시설 주변에서도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문제점인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느낄 수 있었다.
2일 차 (오후): 최종 목적지, 샌프란시스코와 금문교의 위용
페블 비치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몬터레이와 카멜을 지나면서 PCH는 점차 내륙으로 접어들었고, 비교적 평탄한 도로가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웅장한 붉은색 다리, 금문교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탄성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금문교 북쪽 끝에 있는 비스타 포인트에 차를 세우고 다리 전체를 조망했다. 짙은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금문교의 위용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다리 위를 천천히 걸으며 샌프란시스코 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하지만 금문교 주변의 공원에는 많은 노숙자들이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들어서니, 로스앤젤레스와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시내 곳곳을 구경했고, 피셔맨즈 워프를 방문하여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느끼며 해산물 요리를 맛보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텐더로인 지역은 노숙자 문제와 마약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많은 대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면서 도시의 경제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높은 주택 가격과 생활비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인구 감소와 일자리 감소, 심각한 재정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2025년 현재 트럼프 정부의 반 이민 정책과 맞물려 그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강화된 이민 정책은 저임금 노동력 감소를 야기하고, 이는 곧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사회 서비스 시스템에 대한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아름다움과 그늘, 그리고 희망을 향한 노력
1박 2일간의 캘리포니아 해안 일정은 아름다운 자연과 매력적인 도시들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촬영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캘리포니아가 직면한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마약 문제, 주택 문제, 경제 침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2025년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펼쳐지는 환상적인 자연과 각 도시가 가진 고유한 매력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정부와 캘리포니아 주 정부, 그리고 시민들 모두가 힘을 합쳐 이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간다면, 캘리포니아는 다시 한번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